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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와 형벌 : 조선의 범죄 대책과 『경민편』
교화와 형벌 : 조선의 범죄 대책과 『경민편』
- 자료유형
- 단행본
- ISBN
- 9788984946972 93910 : \32,000
- DDC
- 951.902-20
- 청구기호
- 951.5 정95ㄱ
- 저자명
- 정호훈 , 1962- , 鄭豪薰
- 서명/저자
- 교화와 형벌 : 조선의 범죄 대책과 『경민편』 / 정호훈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 혜안, 2023
- 형태사항
- 384 p. : 삽화, 표 ; 24 cm
- 주기사항
- 부록: 1. 『경민편』 초기 3간본의 원문과 구결 비교 -- 2. 『경민편』 주요 간본의 특징과 소장처
- 서지주기
- 참고문헌(p. 370-379)과 색인수록
- 주제명-개인
- 김정국 , 1485-1541
- 일반주제명
- 형법[刑法]
- 가격
- \32,000
- Control Number
- joongbu:652153
- 책소개
-
3백년에 걸쳐 지방민의 교육에 활용되는 자료ㆍ교재로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모한 「경민편」을 통해 본 조선시대 교화와 형벌의 역사!
이 책은 16세기 이래 수백 년간 조선에서 『경민편』을 간행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을 좇아 정리한 연구이다. 『경민편』은 1519년(중종 14) 황해도 감사를 지내던 김정국이 편찬하여 지방민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중앙 정부와 지방 권력은 이후 19세기 말까지 이 책을 4차례나 증보하며 보급했다. 조선에서 숱한 책들이 나타났지만 『경민편』만큼 권력의 사랑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지방민들의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에 좋은 내용을 이 책이 적절히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 정호훈 교수는 우선 『경민편』이 16세기 초 기묘사림의 정치의식을 반영하며 만들어진 경세(經世) 문헌이라는 전제 하에 이 책의 성격을 살폈다. 김정국은 지방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13개 주제로 정리하고, 각 주제 별로 도리(道理)와 사리(事理)를 들어 범죄를 저지르면 안되는 이유를 거론하는 한편 죄를 범할 경우 받게 되는 형률의 처벌 규정을 제시했다. 지방민들이 범죄가 가진 인륜 혹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알게 되면 범죄를 피하며 살 수 있으므로, 지방의 권력은 이점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계도해야 한다는 것이 김정국의 생각이었다.
『경민편』은 내용과 구성에서 크게 보아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범죄의 위계를 재구성하여 가족과 혈연에 대한 범죄를 중요하게 부각했다. 김정국은 범죄를 배치하며 부모를 비롯한 가족·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 범죄를 그 다음에 위치시켰다. 범죄를 두루 포괄하되, 가족과 혈족·가문을 중시하는 의도된 구성이었다. 여기에는 종법(宗法)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던 이 시기 사족(士族)의 사회적 이해가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요소는 권력 운영 방식이었다. 범죄자가 나오기 전에 지방민에게 범죄가 갖는 문제를 교육과 계몽으로 미리 알게 해야 한다는 『경민편』의 방식은 교화의 영역, 교화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확대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15세기의 권력이 교화를 내세우면서도 그 주된 내용은 충성·효도·절개 등 삼강의 규범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는 범죄를 막고자 할 때 형벌책이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경민편』은 이에 반해 일상의 교육과 계몽의 영역을 주요 범죄로 이동하여 확장했다. 형벌의 대상이 곧 교화의 대상이었다. 지방민들이 범죄를 저질러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범죄와 일탈에 대한 국가의 엄혹한 처벌 규정을 앎과 동시에 그러한 범죄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미리 깨달아야 한다는 접근법을 취하였다. 교육과 계몽을 통해 지방민들이 범죄와 형벌의 실체를 이해하게 하여 그들의 범법을 막아내고 이로부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안정과 권력을 유지한다는 관념이 저술의 바탕에 가로 놓여 있었던 셈이다. 『경민편』 최고의 개성은 여기에 있었다.
조선 당쟁기 『경민편』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경민편」은 16세기 후반 경상감사이던 동인 허엽(許曄)이 중간하고 17세기 중엽 완남부원군 서인 이후원(李厚源)이 간행하여 전국에 보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시기 『경민편』의 간행 형태는 16세기 후반 이래 나타난 당파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의 정치세력이 학문과 정치적 입지에 따라 분화한 결과였는데, 『경민편』의 활용 방식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었다.
허엽 간본과 이후원 간본은 초기 김정국 간본에 비해 구성이나 내용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 특징이다. 더불어 두 간본 모두 한글 대역문을 실어 독자들의 접근 폭을 확대한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이후원의 간본은 「경민편」의 위상을 크게 바꾸었다. 앞서 나온 여러 간본과 달리 중앙 정부에서 주도하여 간행하고, 보급 범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지방 권력이 지방민의 범죄 예방, 풍속 변화에 이 책을 활용하는 수준 또한 제고되었다.
이후 『경민편』은 1728년 이인좌 세력이 일으킨 반(反)영조의 반란 이후 크게 주목받으며 예전에 볼 수 없던 풍부한 내용을 갖추었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방관들, 특히 변란의 기운이 강했던 지역의 지방관들은 이 책을 적극 이용하고자 했다. 평안도 감사 송인명(宋寅明)의 편찬본, 상주목사 이정숙 편찬본이 이때 편찬되었다. 『경민편』을 증보하여 내용을 늘리고 두텁게 만들던 방식은 18세기 후반 이래로 사라졌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경민편』을 전국에 보급하려고 노력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경민편』이 등장한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관들이 이 책을 중시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인 내력은 이와 같이 복잡했다.
『경민편』은 조선의 권력, 그리고 지방민 양측에 두루 의미 있던 문헌이었다. 국가 권력은 주자학의 경세 이념을 통하여 지방, 지방민의 유교화(儒敎化)를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얻고자 했다. 조선의 권력이 편찬하고 활용한 도서를 살피자면, 『경민편』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많이 간행되고 읽혔다. 『경민편』은 향교의 공교육(公敎育)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에서, 범죄의 문제를 교화의 차원에서 가르치는 문헌이었으며, 유교에 내재된 가치를 지방의 상민들에게 알리는 수단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조선의 국가 권력과 민인이 만나고 길항하며 상호 변화하던 비밀의 힘을 오늘날 확인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로가 여기에 숨어 있었다.